단발모리의 15년 지기 친구, 장수.
똑똑하고, 주관 뚜렷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녀를 알고 싶다.🧐
<aside> ✅ 자기소개
간단하게 독자들에게 인사 & 소개 부탁해
안녕하세요 🙂 저는 독일 로스토크에 있는 막스 플랑크 인구학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Demographic Research)에서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장수연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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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현재 독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여기서부터는 그냥 너에게 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쓸게 😊
쉽게 말하자면 대학원생으로 일하고 있어. 내가 있는 연구소는 독일 막스 플랑크 협회 소속의 인구학 연구소야. 감사하게도 좋은 연구환경을 가진 기관에 소속되어서 일하고 있어. 인구학은 쉽게 말하자면 인구가 태어나고, 죽고, 이동하면서 변화하는 현상을 관찰, 측정, 예측하고,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야. 그중에서 내가 집중하는 부분은 인구 집단이 늙어가면서 질병을 앓다가 사망에까지 이르는 현상에 관한 부분이고. 왜, 누구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건강하고, 누군가는 젊을 때부터 여러 만성질환을 앓지만 그래도 오래 살고, 어떤 사람들은 질환을 앓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건강이 나빠져서 비교적 이르게 사망하기도 하잖아. 그러니까 얼마나 일찍부터 병이 생겨나서 얼마나 빠르게 나빠지고, 언제 사망하게 되는지를 관찰하고 있어. 또 어떤 집단에서 더 일찍, 더 빠르게 건강이 나빠지는지, 즉 노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큰 지를 연구하고 있어.
특히 나는 이민자 집단에 관해 많이 연구하고 있어. 아무래도 내가 이민자로 외국에서 살고 있다 보니, 이민자가 원주민보다 얼마나 건강하지, 혹은 아픈지가 궁금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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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왜 독일로 오기로 결정한거야?
알다시피 나는 학부는 간호학을 전공했어. 한 번도 병원 간호사로 일을 한 적은 없지만 말이야. 독일은 대학원을 가면서부터 나오게 되었어. 사실 석사는 프라이부르크라는 다른 지역에서 하고, 그 이후에 일 년간 연구원으로 한국에서 일하다가 다시 박사를 나왔어. 처음 석사를 독일로 나온 계기는 사실 약간 재미있는데, 대단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게 아니어서 그래.
대학교 3학년때 처음으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게 되면서 대학원이 나한테 잘 맞는지가 궁금했어. 그래서 대학원 수업을 몇 개 수강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기왕이면 외국에서 들어보고 싶었지. 그리고 그때 당시에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싶던 주제가 난민 건강이었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북한 이탈 주민과 연결을 해보고 싶었어. 그래서 한 생각이 (1) 당시에 난민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던, (2) 그리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분단과 통일의 역사가 있는 독일에 교환학생을 가서 대학원 수업을 수강하자는 거였어. 대학원 수업을 듣고 싶은 거기도 했고, 구체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었기 때문에 난민이나 이민자 보건 관련 수업이나 과정이 있는 대학교 교수님들께 직접 메일을 해서 그중 한 곳에 방문 학생으로 가게 된 거지. 그리고 그게 인연이 되어서 그곳에서 석사까지 하게 된 거야. 사실 방문 학생으로 있으면서 학점을 거의 전부 이수해 둔 데다가 논문까지 썼었기 때문에 반년만 더 있으면 학위를 받을 수 있었거든.
박사를 다시 독일로 오게 된 건 지금 있는 기관에서 일해보고 싶어서가 정말 커. 박사 지원을 할 때는 다른 나라 다른 대학교들도 썼었는데, 지금 있는 연구소에서 하는 연구들이 엄청 매력 있어 보였거든. 우리나라는 인구학이 있는 대학도 많지 않으니까 인구 보건학을 정말 본격적으로 하는 연구소에 가서 많이 배워오고 싶기도 했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독일에 나왔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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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타지에서 홀로 살이, 외롭지는 않아?
외롭지는 않아. 익숙해 진 것도 있고 다행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 아니어서 ㅎㅎ 그런데 외롭기보다는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그리울 때는 있어. 가족이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 항상 옆에서 함께 할 수 없는 부분이 타지살이의 가장 힘든 점이라고 생각해. 그런 기분이 들 때는 그저 전화나 영상 통화를 길게 하는 것 같아. 보통 하루에 한 시간은 꼭 남편이랑 통화하니까. 일하면서 한마디도 안하고 전화만 틀어 놓을 때도 있고, 밤에 자면서 통화하다가 아침에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이 되어있을 때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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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15년 지기 친구로서, 장수의 간호학과 입학 소식을 듣고 굉장히 놀랐어. (**분명 철학과 문학을 좋아하는 girl이었던 것 같은데.) ****
간호학과 진학은 어떻게 결정하게 되었어?
나는 항상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자연스럽게 고등학생 때는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삼아서 공부했던 것 같아. 고등학교 3년 동안은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런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질 것처럼 보이는 외교학과에 관심이 갔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멋있었던 걸 하고 싶었던 것 같아 ㅋㅋ 내가 입시를 하던 당시에는 서울대학교에서 과가 아닌 학부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외교학과가 속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부 입학”을 목표로 잡았었지.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생각보다 현역 수능을 잘 보지 못했고, 그래서 재수를 하게됐잖아? 두 번째 입시에서는 더 열심히 준비했고 수능에서도 나름대로 부끄럽지는 않은 점수가 나오긴 했었는데 아쉽게도 점수가 목표했던 만큼 높지는 못해서 대학과 전공 중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었던 것 같아.
그때를 돌이켜보면 무척 고민이 컸던 것 같은데 사실 대학이나 전공 중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 어쨌든 당시에 나는 좀 전공을 선택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 같아. 어른들은 전부 내가 서울대에 가기를 원했지만, 당시에 지원할 수 있는 범주에 있던 전공 중에 내가 생각한 과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고민스러웠지. 게다가 내가 남이 이렇게 하라고 하면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하는 반골 기질이 약간 있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 근데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신 이모부께 조언을 구한 후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일종의 깨달음을 얻어서 선택을 결정할 수 있었어. 그때 이모부가 두 가지 말씀을 해주셨는데 지금도 고등학생 친구들이 나한테 대학과 전공 선택에 관해 물어보면 이 이야기들을 해주고는 해.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내가 그냥 멋있게 국제적으로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지 엄청나게 어떤 전공을 잘 알고 애착을 두고 준비하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아마 정시러여서 더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수시 친구들은 좀 다를 수도 있겠지, 나보다 훨씬 먼저 구체적인 미래를 그려야 했을 테니까. 아무튼, 미래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보게 되면서 나는 내가 열심히 할수록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일, 또 한국에 제한되지 않고 국제무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해봤어. 아무래도 의료나 보건 관련된 일이 그렇잖아? 그래서 서울대 간호학과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
어떻게 보면 “점수 맞춰서 갔다”라는 구구절절한 사연이기도 한데 ㅋㅋ 지금 내가 여전히 보건학을 하고 있기도 하고, 또 외국에 살면서 이민자의 건강을 연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고등학교 때 원했던 삶과 아주 멀지 않기도 해. 그렇게 생각하면 참 잘한 선택이었다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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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선택의 순간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음식 메뉴도 잘 못 고르는 장수.. 자기 일에 있어서는 결단력 있는 모습이 신기하고 멋있어. 그런 결정은 어떻게 그렇게 잘한다니.
내가 인생에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뭐가 더 재미있는가인 것 같아. 직업을 선택할 때도,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그랬던 것 같네. 어떤 일이 더 재미있을까, 이 사람과 함께하면 평생 정말 재미있겠다, 그렇게 생각했거든. 난 어릴 때부터 제가 하고 싶고 재미있는 것들이 아니면 정말 게으른 아이였거든.
사실 정말 재미있는 부분은, 내가 대개의 사안에 대해서는 정말로 의견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거야. 나는 대부분은 선택을 내리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잘 하지도 못하거든. 강한 의견이 없으니까 오늘 무슨 옷을 입을지, 점심 메뉴는 짬뽕인지 짜장면인지와 같은 일상적인 선택들은 내리기가 힘들어. 진짜 스티브 잡스처럼 똑같은 옷만 왕창 사서 돌려 입고 싶을 때도 많아.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서는 그렇게 둘 다 똑같이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어. 어떤 선택은 내리기 직전에 “짬뽕을 먹어도 맛있겠지만 짜장면을 먹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언제나, 내가 더 재미있는 - 혹은 재미있을 것 같은 - 선택지가 짜장면이어서였던 것 같아.
인생은 너무 짧고, 후회는 항상 내가 더 끌렸던 어떤 선택을 하지 않아서 온다고 생각해. 조금 돈을 덜 번다던가, 지금 조금 더 힘들 수 있다던가, 그런 건 사실 정말 즐겁고 재미있어 보이는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유용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생각해. 재미있는게 있다면 그걸 따라가는것, 그게 내 선택의 기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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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 (+ 극복했던 순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 이건 참 잘한 선택이다’ 하는 게 있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사건이 사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유부녀로서 의무사항: 남편을 만나고, 유학을 나오면서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은 게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고 가장 큰 전환점이라고 생각해 😊어떻게 보면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아무래도 연구자로의 삶은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정규직과 안정감 있는 삶을 생각하기 어렵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좋은 환경에서 하기 위해서는 동반자가 나의 삶을 전적으로 이해해주고 또 응원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나보다 더 나의 꿈을 생각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정말 다행인 것 같아. 나 역시도 유학을 가지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할 때가 있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뒤로 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오히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포기하고 희생하지 말자고 나를 다잡아주던 사람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
다른 면으로 나를 성장하게 한 건 대학생 때 학교에서 베를린으로 간 연수였어. 여러 전공의 학생들을 모두 모아서 함께 베를린에 가서 여러 강의도 듣고 독일어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아. 가기 전에는 내가 여기를 가서 무슨 소용이 있나 싶고, 그저 좀 저렴하게 해외 여행한다고 생각하고 갔었는데 내 인생을 바꾼 선택이 된 거지. 진짜 돌이켜보면 왜 거기를 지원했는지 어떻게 지원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신기해. 직감적으로 여기를 가야 한다는 걸 알았던 걸까 ㅋㅋ
이 연수에서 대여섯 명의 학생들과 한 조가 되어서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조사하고 발표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이때 내가 속한 조의 주제가 독일의 난민이었어. 당시 한창 독일이 난민을 많이 수용하던 시기였거든. 각자 속한 전공이 다르니 각자 전공의 시점에서 난민이 들어오는 현상을 바라보게 되고, 나 역시 간호학도의 입장에서 건강이나 보건 정책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러면서 이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겪는 인구 집단의 입장에서 필요한 보건 정책이 무엇일까, 어떤 종류의 병에 노출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이 주제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니까 커리어적으로 정말 큰 이정표가 된 셈이지.
또 이런 커리어적인 터닝포인트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성장을 이룬 곳도 이 연수였어. 이 이야기는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연관이 있는데 말이야.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힘들어했던 순간은 아마도, 간호학과에 입학하고 3학년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거든. 전공은 재미없는데 다른 곳에 가기는 이미 늦은 것 같고, 선택을 잘못해서 인생이 뭔가 망한 것 같은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 “이 재미없는 일을 평생 하겠지” 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 연수에서 한 친구와 나눈 대화가 내가 이런 생각과 힘든 시기를 극복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고 나를 변화시켰어. 이 친구는 사실 이런 대화를 했다는 것조차도 기억을 못 할 것 같지만 말이야.
한국에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같이 연수에 참여했던 친구들과 다 같이 술을 한잔했었어. 그때 나는 정말 한국에 돌아가기 싫을 때였어. 돌아가면 다시 실습이고 나는 실습이 재미가 없었고. 게다가 다른 전공 친구들과 다 같이 있으면서 뭔가 분위기가 환기되는 기분이었는데 우리 학교는 의료 전공 캠퍼스가 따로 있어서 귀양을 가는 것 같기도 했어. 그래서 내가 그때 옆에 앉은 친구에게 부럽다는 말을 했었던 것 같아. 뭔가 나는 갇혀있는 것 같고 내 진로는 재미없는 간호사로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 다들 자유롭게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자유롭게 진로를 선택할 수 있어 보였거든 (간호학과 친구들은 다들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때 그 친구가 나한테 정말로 진지하게, 언니, 그런 생각 하지 마. 라고 그러더라. 그리고 그 친구가 영문학과 친구였는데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 영문학을 전공하고 셰익스피어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 같냐고. 그러고는 다들 엄청나게 고민하고 자신의 흥미와 적성이 무엇인지 고려해서 진로를 정하는 거라고 하더라. 누구는 대기업에 가고 누구는 로스쿨에 가고 자기처럼 글을 쓰겠다는 친구는 있지만, 아무도 남이 시키는 대로 “영문과에 왔으니까 ㅇㅇㅇ이 되어야한다” 라고 생각해서 자기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그건 간호학과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고.
그때 뭔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더라. 사실 그 앞에서는 “너는 몰라”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는데,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진짜 크게 동요가 되더라고. 나는 사실 내 전공을 내가 고민하지 않고 남의 말에 따라서 내 미래를 결정해버리는, 이런 게으름을 피우는 것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었구나 하는 점을 깨달았거든. 정말 병원 간호사가 되더라도 갈 수 있는 길이 수만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폭도 생각을 깊이 할수록 여러 갈래로 갈리기 마련일텐데 말이야. 나는 그저 내가 지금 있는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고, 정말로 재미있는 일이 무엇이고 그걸 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생각하는 게 두렵고 무서워서 회피하고 있었던 거지. 나는 어차피 늦었어, 하고 말이야. 그 친구 덕분에 간호학과이고 아니고는 내가 내 인생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정말 고민해서 내디디고 그 선택의 책임을 지면서 사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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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인생에 있어서 좋아하는 일 & 잘하는 일을 발견한 순간.
지구력이 좋고, 몰입을 잘 하는 게 너의 장점인 것 같아. 그게 돌고 돌아 지금 오랜 기간 한 가지를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란 삶을 살게 한 것 같고. 이런 건 언제 어떻게 발견했어?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일이라면 질리지 않고 몇 시간 씩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이게 공부가 될 줄은 몰랐어. 우리 엄마는 아직도 놀려 ㅋㅋ 너가 말한대로 내 지구력이 좋긴 한데 그게 재미가 없는 일에는 발휘가 전혀 안 되거든. 그래서 공부 자체를 좋아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게다가 이미 말한대로 전공 공부는 더더욱 싫어했었으니까 지금에 와서 대학원도 가고 평생 공부하겠다고 하는게 놀리고 싶을만도 해.
이렇게나 평생 공부하는 삶을 상상도 못했던 내가 인생에 있어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연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 계기는 학부 때 처음으로 논문을 쓰면서야. 우리 학교는 전공 필수 이수 과목 중에서 간호연구라고 논문을 쓰는 과목이 하나 있었거든? 이게 여러 명이 함께 논문을 쓰는 과목이었는데 내가 덜컥 조장이 된 거야. 내가 아무리 재미없는 건 안 한다지만 책임이 생기니까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싶었어.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까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는 거야. 내가 어릴 때 레고를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는데 본질에서는 비슷하게 느껴지더라고. 내가 궁금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길을 디자인해서 차근차근 밟아 나가는 과정이 마치 내가 만들고 싶은 모양을 정하고 그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조각들이 어디에 필요한지 생각해서 설계한 다음, 조립하는 것처럼 느껴졌어. 게다가 재미있는 게 잘하는 것이 아니면 조금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 논문으로 졸업 논문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어. 그러니까 바로 이거다, 싶더라고. 그때 딱, 공부를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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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이 가장 필요한 것 같아?
이건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나도 너한테 물어본 질문이기도 하고. 나는 정말 운이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 같아서 항상 감사해. 그래도 내 경우에 비추어서 대답을 해보자면, 적어도 나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을때 조차 말이야.
사실 뭘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데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이유를 찾을 수는 없지만 다른 누군가는 정말 지루하게 느끼는게 나에게는 재미있고, 반대로 남들은 짜릿하게 느끼는 무언가가 나에게는 정말 재미없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모두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만 같은 집단 안에서 나는 불행했었던 것 같거든. 내 진정한 목표가 그 달리기의 목적지였다면 불행했을 리가 없으니, 나는 아마 이건 나에게 재미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다른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그런데 그 생각을 인정하는 순간, 너무 불편한 상황들을 마주해야 하니까 아예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를 회피했던 것 같아. "왜 너만 튀는 행동을 하니?"라는 질문과 다른 사람과 다른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상황들 말이야. 적어도 불행할지언정 무리 안에서는 남들이 가는 대로 가면 안전하게 느껴지니까 검증되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기 두려웠었지.
나와 다른 상황의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 언제든 도전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무엇에 도전할지 알 수 없어서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겠지? 그런 사람들에게는 도전할 준비가 되어있는 게 부럽다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뭐가 좋고 뭐가 싫은지 느껴보라고 하고 싶어. 하지만 예전의 나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에게는, 두렵더라도 저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마음의 소리를 한 번만 들어달라고 말하고 싶어. 인생은 너무 짧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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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좋아하는 일을 찾아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내 계정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잘하는 게 무엇인지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매우 매우 많아.
그런 이야기가 있어. 너무 피하려고 하면 오히려 만나게 된다고. 나는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내 마음의 부끄러운 어느 면모가 내가 사실 정말로 원했던 어떤 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 두려워하는 상황,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 내가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상황들 말이야.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내 마음의 작은 자투리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어떤 일, 되고 싶었던 어떤 사람이 손을 들고 나를 반겨줄지도 모르니 그 감정들을 회피하고 도망가기보다는 똑바로 들여다보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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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너의 삶에 만족해?
만족해! 재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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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나의 인생 가치관 &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소중히 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 생긴다면 그걸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삶, 이 두 가지 삶을 조화롭게 하나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고 싶어. 물론 살면서 우선순위와 집중할 것을 정하는 것은 매우,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과 사랑 (혹은 가정) 중 한 가지를 포기해버리면 너무 슬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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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10년 전의 나로 돌아간다면 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선택을 내리든, 너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 어릴 때의 나는, 물론 제멋대로였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저 선택해 나가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의 눈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 같거든. 남들이 그 길은 잘못된 길이라고 하면, 기껏 내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해 놓고도 “남들이 옳았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전전긍긍했었어. 그러면서 나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고. 그랬던 어린 나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게 선택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그 선택을 내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말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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